대상들에 대한 경이로운 존경심. 각 대상은 고요히 ‘홀로’ 놓여 있을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거기에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존재가 있습니다. 따라서 자코메티의 예술은 대상들 간의 사회적 상호작용, 즉 인간과 그의 생산물 간의 관계에 대한 사회적 예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만의 존재로 당당한 룸펜의 예술이며, 대상들을 서로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모든 존재, 모든 사물의 고독에 대한 깨달음의 순수한 지점에 닿아 있습니다. 대상은 마치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혼자입니다. 그래서 내가 갇혀 있는 운명에 맞서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현재의 모습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면 나는 파괴될 수 없습니다. 현재의 나, 그리고 나의 고독은 주저없이 당신의 고독을 이해합니다.”

그동안 제가 쓴 글을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책을 한 단어로 요약하고자 하는 시도를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이 시도는 인간, 자연, 예술 작품, 행정, 법, 제도, 사회, 과학 등 주변의 모든 것들이 대상이 되고, 그 속에서 욕망이 촉발되어 이를 시도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중심을 찾아 간직하고 싶은 욕망을 통해 세계의 의미를 찾으려는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삶의 태도는 좋든 싫든 저를 만들어 왔고, 현재의 제 모습을 표현하는 데 중요한 성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모든 것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포함되는지 알 수 없으며, 그 범위를 파악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또한, 세상의 존재들이 점차 늙어가는 특성 때문에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없다는 사실은 또 다른 표현으로, 궁극적인 지점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슬프면서도,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의 삶에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억 깊은 곳 어딘가에 있는 거대한 의문 하나가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를 통해 세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의문은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많은 양과 질을 가지고 있어서, 함부로 의문을 제기할 경우 스스로에게 위험을 끼칠 수 있기에 사유하기를 꺼려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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